미얀마; 영혼구원의 황금어장, 미얀마

종족 개관

19세기 말 미얀마를 지배하던 영국의 ‘분리주의 정책’으로 버마족과 소수민족 사이에는 적대적인 관계가 형성되었는데, 이 구조가 지금까지 이어져오면서 숱한 민족분쟁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이런 분쟁을 해소하고자 1989년 군사정부는 ‘버마’라는 옛 이름을 버리고 ‘결속’이란 뜻의 ‘미얀마’로 나라 이름까지 바꿨지만 그 효과는 미비합니다.
불교국가 미얀마는 양과 질적인 측면에서 모두 세계 최대의 불교 국가입니다. 전체 인구의 90%가 불교 신자이며, 대표적 관광도시인 ‘바간’은 세계 3대 불교 유적지 중의 하나입니다. 미얀마에 처음 불교가 전파된 것은 6세기경 몬 왕조에 의해서입니다. 고도의 문명세계를 구축했던 몬 왕조는 인도에서 불교를 들여왔습니다. 그리고 300년 뒤인 바간 왕조에 이르러서는 불교가 미얀마의 국교로 자리 잡게 됩니다. 오늘날 미얀마 곳곳에 들어선 400만 개의 사찰들은 바로 이때 세워진 것들입니다. 14세기 한따와디 왕조 시대에는 미얀마 불교의 상징이자 미얀마의 자존심인 쉐다곤 파고다가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미얀마의 불교는 고대 왕조들의 보호 속에 서서히 견고하게 미얀마인들의 생활 속에 깊이 뿌리를 내려왔습니다.
국가가 불교를 두둔하고 보호하는 이런 흐름은 현대에 와서도 좀처럼 바뀌지 않고 있습니다. 일본으로부터 독립한 1948년, 미얀마 연방 공화국이 수립되었고 미얀마 정부는 신앙의 자유는 인정하되, 불교의 우월성을 인정하는 헌법을 발표했습니다. 1962년에 쿠데타로 집권한 군사정권이 공산주의에 불교를 접목한 ‘미얀마식 사회주의’를 내세운 것은 미얀마 불교의 절정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결과는 참담했습니다. 같은 동남아시아 국가들에게 선망의 대상이었던 경제는 퇴보를 거듭했고, 그 결과 아시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로 전락했기 때문입니다. 결국 미얀마식 사회주의는 종말을 맞이했고, 견고해 보이던 불교의 위상도 예전 같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수백 년에 걸쳐 불교가 쌓아온 진은 흔들릴지언정 쉽게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미얀마 곳곳에 들어선 400만 개의 사찰에서는 여전히 우상숭배의 죄를 범하는 미얀마인들로 넘치고 있습니다.